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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20년, 내가 서 있는 자리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항쟁도, 노동자대투쟁도 일어나지 않은 채 몇 개의 기념식만을 뒤로 하고, 20주년이 지나갔다. 그나마 6월 항쟁 20주년 기념행사는 관변행사 일색이거나 민관 합동의 애매한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의미 있는 기념행사는 거의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올해 이 20주년에 항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더 절실하게 그 항쟁을 기다렸다고 해야 옳다. 기다린 항쟁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내가 겪은 1987년
20년 전인 1987년에 나는 감옥에 있었다. 감옥에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맞았다. 1986년 겨울은 매우 혹독했다. 국가보안법 조직사건으로 운동권을 일망타진하겠다고 별렀던 전두환 독재정권은 그해 10월 건대항쟁을 대대적으로 억압했다. 그때의 감옥은 정치적 상황에 매우 민감했다. 밖에서 투쟁이 가열차게 전개되고, 정권이 밀리는 때는 그나마 감옥살이가 수월했지만, 그해 겨울과 같은 해에는 걸핏하면 보안과 지하실에 끌려가 주리 틀리기 십상이었다. 그해 겨울에만 보안과 지하실을 몇 번을 끌려갔던지 영등포교도소의 옥중투쟁위원회 동지들은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무모하게 붙을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렸다가 제대로 붙자고 했다. 1월 하순에 접어들어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전 사동에 있던 양심수들은 일제히 일어나 감방 문짝을 걷어찼다. “고문정권 타도!”를 외친 그 투쟁으로 우리는 모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먹방에 갇혔다. 수갑이 뒤로 채인 채로 며칠이고 저들이 꺼내줄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개밥을 먹고, 똥오줌을 옷에다 그대로 지려야 하는 생활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도 채우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나중에서야 우리가 갇혔던 먹방에 붙어 있던 특사에 고문경관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척에 고문경관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고 면회를 나가면서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그 특사를 향해 뛰어가다가 잡혀 허망하게 끌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4월 13일, 나는 항소 끝에 2년형을 확정 받고 대전교도소로 이감 가는 중이었다. 포승줄에 묶여서 까만 지프차 타고 양 옆에 교도관들이 붙어 앉았다. 양심수 중에서 꼴통들만 간다는 동양 최대의 감옥, 대전교도소. 거기로 가는 와중에 라디오를 통해 전두환이가 호헌을 발표하는 담화를 직접 들었다. ‘더럽게 재수 없다. 이제 죽었다.’
대전교도소에서 나는 호되게 당했다. 5.18 기념 단식투쟁 끝에 소 내에 사건이 있어서 항의하다가 중구금 독방에 끌려가 되게 묶였다. 너무 세게 묶어서 밧줄이 살을 파고드는데,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혀를 바닥에 찧어서 피를 내고 그걸 뱉어 벽면을 깐에는 붉게 물들였고, 내심으로는 이러면 풀어주겠지 했는데, 웬걸 그곳 교도관들은 오히려 세게 묶고는 방성구까지 채웠다.
그런 뒤에 굴복하고 넘어갔던 특사에서 6월 항쟁 소식을 들었다. 면회 온 사람들 입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4.19 때보다 더 큰 데모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였다. 처음에는 그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영등포교도소에서 있을 때까지는 바깥소식을 웬만큼 듣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갑자기 투쟁이 벌어질 조짐은 읽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소문은 현실이 되었다. 교도관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근무를 섰다. 대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교도소까지 매캐한 최루탄의 냄새가 날아들었다. 그 냄새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리고 그해 7월,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전날 난 가석방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곧장 노동자대투쟁이 터졌다. 석방되어 나온 우리는 석방양심수 동지회 같은 것을 묶어서 감옥에 남은 동지들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 같은 것을 하고 있을 때 울산에서부터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곧바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어디고 투쟁이 없는 곳이 없었다. 내가 주로 있던 부평지역에서도 곳곳에서 민주노조 건설 투쟁이 진행되었다. 내가 해고자로 감옥에 갈 때는 생각도 못했던 변화였다. 그런 곳을 돌아다니며 지원투쟁을 하면서 사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도 중요한 시기에 감옥에 있었던 것이 어찌나 후회되던지, 1년여의 공백은 대중투쟁의 발전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왕좌왕하는 중에 그 중요한 역사적인 시기는 흘러가버렸다.
그리고는 대선 국면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분열되고, 운동진영도 3파로 분열했다. 그리고 대선은 KAL기 폭파사건에 힘입은 노태우 후보의 승리로 낙착되었다. 그런 뒤에 몰려온 패배감과 분열, 1988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내 동생 래전이는 그해 6월 광주학살 원흉의 처단을 외치면서 분신했고…, 끝내 죽었다. 1987년 패배의 후유증은 내게 친아우이자 운동의 막역한 동지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동생의 죽음과 인권활동가로 변신
그때 학생운동 출신들이 거의 그랬지만, 노동운동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강제 징집된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나는 부평으로 달려갔다. 그렇게도 바라던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감옥을 나온 나에게도 여전히 할 일은 노동운동뿐이었다. 그런데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현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세미나를 하면, 허리가 아파 누워서 해야 할 정도였다. 일단 학교에 복학을 하고, 관망하고 있던 차에 동생 일이 터졌고, 그 길로 유가족이 되었다. 그리고는 참으로 생소한 유가족들과 어울리게 되고, 이른바 재야라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노동운동 할 때는 말로만 듣던 운동의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게 된 것도 그런 인연으로 해서였다.
1988년 10월, 동생의 죽음 뒤에 방황하다가 들렀던 곳이 전국의 의문사 가족들이 농성을 진행 중이던 종로5가 기독교 회관이었다. 실무자는 겨우 한 명. 별로 할 일도 없던 때라서 농성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그만 유가족들과 정이 들고 말았다. 유가족 어머니들, 아버님들은 하루 종일 의문사 진상규명을 호소하면서 거리를 쏘다니다가 시멘트 바닥 위에 스티로폼 위에서 잠을 잤다. 5,60 넘은 노구를 이끌고 거리를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죽은 자식들 보고 싶어서 눈물로 날을 지새우던 그 분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 다음해에는 아예 유가협의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렇게 나는 노동운동에서 인권운동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의 생각은 민족민주운동의 작은 부분으로서 유가족운동을 생각했지, 인권운동으로서 유가족운동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유가협 사무실 자료들을 정리하고, 유가족들을 상담하고 그러면서 고문 문제나 의문사 문제는 정치투쟁도 중요하겠지만, 인권으로 풀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유가협에 있을 때 나의 별명은 ‘재야 장의사’였다. 매년 학생,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화상 당한 열사들의 죽음, 죽음의 마지막 순간, 의문사한 이들의 사진으로 남은 주검의 끔찍함들, 그리고 비통한 장례식과 장례투쟁…. 그때 생각했던 것이 죽은 자와의 약속이었다. 산 자들과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살아가면서 약속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죽은 자와의 약속은 변경할 수가 없다. 다만 지켜야 할 뿐이다. 그 죽음 앞에서 맹세했던 일들, 그 순간의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다짐했던 일들, 목울대가 아프도록 울면서 마지막 이별 앞에서 했던 약속들, 그것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의리다.
1991년 4월말에서 6월말까지의 그 끔찍했던 ‘분신정국’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을 정도다. 그때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면서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노태우 정권의 탄압이 가져온 분신 사태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이 운동권이 죽음을 부추기고, 그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그의 글을, 그리고 그를 아직도 나는 용서하지 못한다. 왜 그들이 죽고자 했는지에 대한 맥락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이어지는 죽음이라는 현상의 책임을 운동권으로 몰고 간 그의 글은 당시 분신의 배후 운운하면서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려던 공안당국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을 선사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김기설 열사의 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로 강기훈이 구속되고, 6월 항쟁의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졌던 분신으로 맞섰던 투쟁의 불길은 사그라졌다.
1993년 6월에 유엔 비엔나 인권대회에 갔다가 그곳에서 세계 각지의 인권상황과 인권운동을 충격적으로 접했다. 기껏해야 양심수 석방 운동이 인권운동의 전부인양 알고 있던 그때에 학살사건을 비롯해서 성소수자 문제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붙들고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인권운동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경이롭게 보라보고서, 비로소 내가 인권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민주운동과 다른 길인 인권운동,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변혁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어떤 결론도 없이 나는 자연스레 인권운동으로 빠져들었고, 1994년 8월에는 정식으로 인권운동사랑방 멤버가 되었다.
그렇게 13년, 인권운동을 거치면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는 것 같다. 인권활동가에 의한 전문적인 활동을 개척하던 시기에 인권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탓에 새로운 영역들을 접해 보았다. 전두환, 노태우 등의 광주학살 책임자들의 구속 투쟁과 이후 과거청산범국민위원회의 결성과 좌절, 사회권운동의 시작, 사회복지시설 생활인들의 인권확보투쟁, 정보인권 농성, 국가인권위원회 설립투쟁, 인권운동연구소의 상임연구원, 인권단체들의 공동투쟁과 그 성과로 탄생한 인권단체연석회의, 그리고 각종 진상조사 사업과 연대활동, 지금도 끝나지 않은 국가보안법 폐지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 그리고 올해에는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까지…. 주제와 영역을 넘나들면서 때로는 제안자가 되어 주체로 활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단위들이 진행하는 투쟁에 연대하면서 참으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끌어안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끝에 지난해에는 지배권력의 재편기에 한미FTA와 평택미군기지 문제까지 맞물리는 상황에서 항쟁 20주년이니, 다시금 항쟁의 불길을 피워 올릴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온 고을마다, 온 산마다, 언덕마다 피워 오르는 항쟁의 불길, 기만과 배제의 민주주의가 아닌, 민중이 진정으로 주인 되는 민주주의, 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의 세상을 향한 항쟁을 관념으로 꿈꿨다. 정녕 나는 항쟁을 기다렸지 내가 주체가 되어 항쟁을 치밀한 계획 속에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하지 않은 항쟁은 결코 오지 않았다. 6월 항쟁, 노동자대투쟁이 있기까지의 그 고단한 투쟁의 과정과 활동가들의 헌신과 열정의 잠 못 들어 했던 밤들, 그리고 배신과 좌절, 숱한 시행착오들을 잊고 그 결과만을 기억한 탓이었다.
운동의 근본부터 생각해야 할 때
6월 항쟁 이후, 세상은 변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세상은 변했다. 군부독재는 물러갔고, 자유주의 민간정치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운동도 변했다. 비합법 공간에서 나와 합법공간을 열어갔다. 전선은 넓어졌고, 그리고 흩어졌다. 그리고 운동은 전망도 잃어버렸다. 궁극적인 지향보다는 합리적인 대안세력이 되고자 했다. 근본적인 모순은 잊은 채로 터져 나오는 사안들의 뒤를 쫒기에 바빴다. 활동가들은 많아졌지만 대중들과의 결합력은 떨어졌다. 대중은 주체가 아니라 동원되거나 여론을 형성해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많은 활동은 언론에 얼마나 노출될 수 있느냐로 판단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IMF 체제를 FTA체제로 넘어가는 숨 막히는 격변의 과정에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논의된다.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주한미군이 100년의 전쟁기지를 건설하는 과정 속에서 말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그래서 위태롭다.
어느 때보다 민중들의 삶은 고단해졌다. IMF 10년은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환상임을 일깨워주었다. 중산층은 분해되어 하층으로 내려오고, 날마다 치솟는 집값, 교육비, 각종 서비스 비용들은 이제 감당하기 힘든 조건이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단지 소득의 차이만이라고? 그렇지 않다. 소득에 따라 접근할 수 있고,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구분된다. 상류층은 하층민, 거기에는 이제는 넘을 수 없는 깊은 골이 흐른다. 아파트 단지에서 임대아파트 지역에는 분리장벽 같은 펜스가 쳐지고, 길을 따로 낸다. 타워 팰리스 옆에는 아직도 주민등록도 못하는 비닐하우스 촌이 있다. 금융파산자가 늘고, 노숙인의 모습들이 일상이 되고, 자살자가 급증한다. 거기에 노인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청년실업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다시 직장에서 잘린 30대, 40대, 50대들이 넘쳐 난다.
이런 현상들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를 불러온다. ‘법의 지배’는 법에 의해 부정된다. 민중들의 투쟁에는 여지없이 경찰폭력이 집중된다. 정치세력들은 민중들의 호소에는 아랑곳없다. 사법부? 민주화의 혜택을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고 그대로 받고 있는 집단이 사법집단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이제 정치권력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독립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나서서 기득권세력, 자본가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계급적 지배기구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 운동은 서 있다. 지난 20년의 세월은 총체적인 변혁의 전망 없는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고, 법제를 만든다 한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근본 지반부터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운동의 성과들은 사상누각처럼 하루아침에 바닷가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은 아닐까? 감동은 사라지고, 운동의 열정은 사라지고, 운동이 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와 환경, 역사로부터 빌려온 앙상한 이론과 이미 힘을 잃어버린 관성화된 실천과 헤게모니 다툼만이 남은 것은 아닌가?
우리 운동에는 종합설계도가 없다. 지금 우리가 하는 운동, 내가 하고 있는 인권운동이 전체 변혁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어떤 경로를 그리며 상승 발전하여 만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이 없다. 그런 그림을 만드는 것, 흩어져 있는 각각의 운동이 강으로 만나고 그래서 결국은 바다를 이루는 그런 구상, 그런 희망이 없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지치고, 세상을 원망하며, 아니 그토록 믿었던 동지들을 원망하며 주저앉거나 떠나는 게 아니던가.
다시 20년 전을 생각해 본다. 그때는 비록 비과학적이었지만(그때로서는 가장 과학적이라는 착각 속에서 만든) 혁명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군부독재를 타도하면 그 뒤에 올 혁명의 세상에 대한 구상은 피 말리는 미행과 감시, 밤샘토론과 세미나, 그리고 투옥과 고문을 견뎌내게 했다. 비록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는 현실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 꿈일지라도, 그때는 혁명을 꿈꿀 수 있어서 그 지독한 독재의 시대를 넘을 수 있었다.
우리 운동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나? 신자유주의 넘어, 자본주의 넘어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는 그 꿈을 말로만이 아니라 종합설계도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인권의 문제도, 민주주의의 문제도, 생태위기의 문제도, 평화의 문제도, 노동해방의 문제도, 성평등의 문제도, 그리고 정치경제의 문제도, 그리고 많은 문제들도 그 종합설계도 안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샛강처럼 분화된 운동들에서부터 내가 몸담고 있는 운동이 어떻게 대중적인 기반을 만들고, 그들을 주체로 세우면서, 궁극적으로 당도해야 할 운동의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검증하고,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 열었던 사회운동포럼은 그렇게 같이 그리는 종합설계도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었으면 좋겠다. 난 이제 개별 운동의 성과를 소중히 하면서도(활동을 하면 무조건 성과를 남겨야 한다. 조직으로 남든, 논리로 남든, 경험으로 남든) 결국은 모두가 만나는 그 강, 그 바다를 준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을 세우는 일, 여기로부터 항쟁을 준비해보고 싶다는 게 항쟁 20주년을 보내는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이제 그런 준비 없이 항쟁을 앉아서 기다리지는 말아야겠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 다시 일어나야지, 나부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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