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웹소식지 제3호
  민들레 DATE 2005-08-21 23:47:23  HIT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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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호   2005년 8월 15일 월요일
■ [정세] 병드는 노동자 살찌는 공단
■ [인터뷰] 많은 이들과 즐겁게 운동하고픈 사람, 맑은 공기를 만나다.
■ [포토스토리] 폭력과 평화사이
■ [책소개] 우승열패의 신화
■ [그때 그때 달라요] 연행의 추억
■ 정세
 
병드는 노동자 살찌는 공단
 

1. 신종 직업병 "정신질환"
최근 들어 노사관계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청구성심병원에서는 관리자가 노동자를 집요하게 감시하고 폭언을 행사해서 노동자들이 정신질환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밝혀진 사례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감시 체제가 있다. 감시-감독을 이용한 노무관리 시스템이 노동자 탄압에 이용되고 있다. 노사분규를 해결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한 신종 수법인 셈이다. 특히 조합원에게 집중적으로 관리감독과 차별대우를 하면서 직장 안에서 '왕따'를 만들고 있다.

2. 집단요양 산재불승인 : 근로복지공단에 복지는 있는가
인간은 누군가에게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감과 초조 공포를 느끼게 된다. 또한 특정한 대상을 더 집요하게 감시한다면 그 불안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누적된다면 신경쇠약이나 강박증에 시달리고 정상적인 노동이나 생활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최근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은 분명한 산업재해다.

그런데 산업재해 노동자를 지원하고 적절하게 요양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노동자들의 집단요양신청을 거부하고 있다. 하이텍알씨코리아(이하 하이텍)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이텍은 2002년부터 임단협 투쟁을 하면서 사측이 CCTV를 설치하고 조합원을 집중적으로 관리, 감독했다. 조합원들만 따로 모아서 작업을 시키고 그 작업공간에는 여지없이 CCTV를 설치했다. 또한 작업라인에서는 관리자들이 조합원들 뒤에 서서 특별히 감시하고 통제 및 폭언을 일삼아 왔다. 계속되는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항상 초조하고 답답하며 감시당하는 공포를 느끼는 신경쇠약, 우울증 등에 시달려 왔다.
이에 노동자들은 5월10일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에 집단 요양신청을 제출했다. 그러나 공단측은 5월27일 비공개회의를 통해서 산재요양신청자 13인에 대해서 전원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하이텍 사측은 5월 20일 비조합원들을 대동하고 실력행사를 벌이며 불승인 판정을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을 진료한 여러 의료단체에서 정신질환 소견을 밝힌바 있다. 또한 이전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오다가 노동쟁의 과정이나 사측의 감시, 감독이 심해진 이후에 정신질환을 알았다는 것은 사측이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에 직접책임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공단측은 불승인 근거인 자문의사협의회의 회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근로복지공단의 행동은 우선 일관성이 없다. 비슷한 유형의 청구성심병원 사례는 집단요양을 승인해 놓고 하이텍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바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및 집단요양에 대한 태도(변화)다.

3. 노동자를 위한 공단인가? 자본을 위한 공단인가?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산업재해로 인해서 치료받던 노동자들의 요양을 강제로 종결한 사례가 종종 있어 왔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한 노동자들이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것이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져 자살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엠프 이후 살인적으로 강화된 노동강도로 인해서 급증하는 근골계 질환에 대해서 산재불승인을 내린 것이 여러 차례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이 최근에는 '근골격계 인정기준 처리지침'과 '요양업무처리규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산재인정 불승인, 강제 치료 종결, 강제 통원 치료 전환, 재요양 및 추가상병 불승인 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를 밝히고 치료와 요양할 수 있게 지원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산업재해 판정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집단요양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즉 공단이 발표한 여러 지침(근골격계 인정기준 처리지침, 요양업무처리규정)들은 간단히 말하면 그 기준을 엄격히 하겠다는 것이다.

4.산업재해를 줄일 것인가? 산업재해율을 줄일 것인가?
이런 효과 때문인지 최근 산재발생율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지난 3월2일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율(당일 한국일보 참조)에서는 2003년 0.90%에서 2004년 0.85%로 산재율이 4년 만에 낮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은폐된 산재율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실제 노동계는 이 통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산업재해율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뀌었다.
산업재해율이 늘어나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이나 자본의 말대로 노동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심해지고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며 안전장구도 갖추지 못하고 현장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늘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텍처럼 노동자의 정신을 탄압해서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자 투쟁을 봉쇄하려는 자본의 새로운 전략 때문이다.

근골격계 질환이나 노동자들의 정신질환 급증이 하는 이유는 사측의 잘못된 노동자 통제 관리 시스템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율을 낮추려면 구조적인 해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바로 노동강도를 줄여나가고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감시, 감독 ,차별행위들을 제거해야 한다. 노동자들을 정신적으로 압박해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겠다는 사측의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이것을 앞장서서 해야 한다. 그러면 요양처리기준을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산업재해율은 줄어들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제라도 자기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 라마스테
■ 인터뷰
 
많은 이들과 즐겁게 운동하고픈 사람, 맑은 공기를 만나다.
 

7월 19일 오전, ‘이윤보다 인간을(아래부터 “이인”)’ 사무실에서 유기만 동지를 만났다. 인터뷰(?) 경험은 꽤 많지만, 아는 사람 얼굴 맞대니 자꾸 쑥스럽단다. 어색할까봐 던진 가벼운 질문. 올라와서 서울 사람 다 됐다던데 얼마나 되셨나요? “5월 23일 집행주체로 올라왔는데, 지금 거의 두 달이 되어가네요. 홍제동 집에서 사무실 오는 것만 서울 사람이고 그 외에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나 할까요(모두 웃음).”


Q : 서울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서울은 땅도 넓고 사람도 많네요.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많이 만나지도 못하고, 얘기도 못 나눠 아쉽고요. “민들레” 회원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가 있다면 참석해서 만나고 싶은데, 제가 연락해서 만나려니 약간 꺼려집니다. “이인” 집행국이 연락한다고 느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뜬금없이 만나자는 것도 웃기고.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 지면을 통해 인사드리면서 앞으로 연락하면 자연스레 만나주시면 좋겠어요(밝은 웃음). 그리고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네요. 지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살아남는 게 힘들 정도입니다. 기본적인 생활비도 많이 들고, 나다니는 게 다 돈이네요.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지역에서야 집도 공짜고, 쌀도 자연스레 여기저기서 나눠주니 돈 들 일이 없었지요. 이 사람 저 사람 차 얻어 타서 이동하기도 편했는데. 서울에서는 자기 생활계획 없이 사는 게 어려워요. 이런 데서 사는 동지들을 보면 경이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Q : 현재 하고 있는 “이인” 활동은?
A : 지금 우리 “이인”은 “최저임금 토론회와 투쟁”, “하이텍알시디코리아 공대위 결합”,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활동” 등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Q : 얼마 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집회에서 집단 폭행되고, 강제 연행되었다던데. 지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A : 지금은 ‘소환장’이 나와 있습니다. 7월 10일 아침에 경찰들이 행사장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마을까지 진입해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마을 방송을 듣고 나가봤더니 이미 밀봉된 상태여서 마을 출입 자체가 막혔더군요. 문정현 신부님과 주민 몇몇이 주저앉아서 경찰들에게 길을 열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이를 묵살하고. 그 와중에 신부님과 주민 한 분을 끌려가며 경찰들에게 폭행당하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옆 봉고차 위로 올라가서 그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저 새끼 끌어내!” 소리치며, 경찰봉을 휘두르데요. 그 와중에 핸드폰은 경찰봉에 맞아 날아가고, 봉고차에서 끌려 내려온 뒤부턴 정신없이 집단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날 조사를 마치고 저녁 12시 넘어서야 풀려났지요. 내보내 주면서 평택 경찰서에서 하는 말이 조사할 것이 더 있으면 부르겠다고 합디다. 실적 위주로 연행하다보니, 피해자에게까지 무리하게 소환을 하는 셈이죠. 지난 며칠 동안 몸 상태가 안 좋아 입원을 했다가 진단서를 끊어놓고 지금은 약도 먹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다리와 팔에 피멍 든 자국이 선명하다. 앞으로 평택 상황을 묻자, “고립되지 않도록 전국화 시키는 게 중요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연대활동과 결합이 필요합니다.” 화제를 “이인”으로 돌렸다.

Q : 집행국으로서 “이인”의 커다란 활동 방향을 잡고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내부적으로 보자면, 지역별 자치조직이 만들어진지 이제 길게는 5년, 짧게는 2-3년 되어 갑니다. 지금은 이 활동들을 점검할 때라 여깁니다. 어떤 조직이던지 정체성 논의를 지속적으로 하며 발전하고 때론 해소도 하고 그럽디다. 우리에게도 개인운동 전망과 활동을 평가하고, 각 자치조직이나 전체적인 조직 차원에서 논의할 시기가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주체든 조금 소극적인 주체든 많은 이들이 “뭔가 새롭게 거듭나야지 않느냐”는 요청을 합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운동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이 시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이 시기 이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하는 판단도 필요하구요. 상황을 판단, 정리하고, 우리 활동을 준비하는 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Q : 노동위원회 활동이 돋보이는데 어떻습니까?
A : 우선 저는 노동위원회와 다른 활동을 구분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노동’은 항상 생존, 생활의 문제 아닐까요? ‘노동’의 범주를 확장하면,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기존 관성을 내부에서 혁신하려는 흐름도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으로 불리는 다양한 운동들이 노동운동 외부로부터 혁신을 요구,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동운동을 하나의 운동 범주로 규정짓는 건 어렵다고 봅니다. 노동운동 안에서 실업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등 빈곤층 운동과 결합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안하니까 다른 사회운동 주체들이 답답함도 느끼겠지만, 노동운동을 기존 질서로만 가둬두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으로 사회적인 생계, 생존의 문제로 접근하면 다양한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Q : 올해 우리 “이인”의 구체적인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 노동운동 혁신, 사회운동의 전망을 서로 교류하는 자리가 이번 여름과 하반기에 잡혀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면 어떤 부분이 다르고, 같다면 어떤 부분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분명히 하는 하반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운동과 관련된 지역별 토론과 논의. 노동운동 혁신과 관련된 지역별 토론과 논의가 각각 진행될 예정입니다. 노동운동과 관련해서는 조직 형식적 차원과 내용적 차원의 문제 모두를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해 갈 예정입니다. 사회운동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정리되어가지 않을까요? 올해 말과 내년 초 쯤에는 구체적인 내용과 활동방향이 나올 수 있어야지요.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어갈 것입니다.

Q : 앞으로 개인적인 포부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A : 개인적으로는 사회운동 6년 반을 “노동자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관료화되고, 안주하려는 모습도 스스로 느껴지고. 아예 탈바꿈해서 좀 더 진지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데요. 근본적으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집행국을 결의하기 전에는 다양한 사회운동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보고 배우는 게 개인 계획이었지요. 그런데 집행국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니, 집국을 결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조직의 2%가 뭔지를 찾아내서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운동하고 싶습니다.

- 땅콩
■ 포토스토리
 
폭력과 평화사이
 
 

 

 

- 라마스테
■ 책소개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 한겨레 신문사
 
나만 몰랐었나?
19세기 말 한국 지식인들은 개화파, 온건 개화파, 위정척사파 크게 세파로 나누어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개화파는 잘 알다시피 일본으로 조사시찰단와 다녀와 대오각성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젊은 '개신' 유림이었고 위정척사파는 청이 이미 외세에 굴복한 마당에 조선만이 중화임을 자임하고 성리학적 이상을 지키려고 했던 유학자들이었다. 개화파가 벌인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났지만 개화파가 주장했던 정책들은 권력의 실제를 잡고 있던 온건 개화파에 의해 많은 부분 수용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여기서 부터가 아이러니하다. 일찍이 서양의 두려움을 알고 어서 어서 개화를 해야한다고 몰아치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이후 친일파가 된다. 서재필, 윤치호, 이광수 등등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이들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머리를 내놓아도 부모가 주신 머리카락은 내놓을 수없다고 주장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던 이들 위정척사파들은 대부분 의병이 되고 이후에는 독립군이 된다. 개화파가 빠르게 현실에 눈뜨고 그에 적응하려했던 현실주의자라면 위정척사파는 오히려 성리학적 이상에 몸을 맡긴 이상주의자였다.
나만 그랬었나? 개화파는 위기의 조선을 구할 희망이었고, 위정척사파는 나라를 말아먹은 어리석은 유학자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서양, 그리고 먼저 서구화된 일본이 가지고 있던 힘, 근대화 그것을 빨리 이루지 못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나는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왠지 발전과 승리하는 말 앞에서 힘을 잃는 나의 목소리의 뿌리는 어디일까?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나라의 이름이 걸린 스포츠에 열을 올리고,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연구에 실체를 알 것도 없이 우리가 우선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민족주의 그 뿌리를 '경쟁과 생존의 전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뜻밖에도-사실 별로 뜻밖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내부에 있지 않고 18세기말 19세기 초 세계를 유행처럼 떠돈 '사회진화론'에 맥이 닿아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그것을 사회에 단순히 적용시킨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무엇보다도 전쟁과 무기에 의한 힘이 우선시되던 제국주의 시대, 무식하기만한 물리적인 힘에 무언가 논리적인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고 '적자생존', '우생학' 등의 이름으로 일본, 중국을 거쳐 한국에 까지 수입된다. 청과 일본 그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에게 청을 무너뜨린 서구의 힘, 일찍이 서구화를 시작하여 큰 힘을 가지게 된 일본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조선의 현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위해 힘을 길러야한다는 논리와 강한 것에 복종하고 약한 것에 군림하는 적자생존의 논리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한성순보, 독립신문에서는 진화론을 소개하고 힘의 논리를 주장하였으며 곧 독립신문 편집주간이었던 윤치호 같은 이는 강한 것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장하게 되었으며 이광수는 민족 개조론을 들고 나왔고 미개한 것을 없애기 위해 단종법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강한 힘에 대한 숭배는 비단 독립군들이라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들 역시 힘의 논리에 기반한 민족주의로 무장하였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여전히 익숙한 모습으로 계속되어왔다. 박정희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논리, 그리고 운동진영에도 만연한 힘의 논리는 내면화된 경쟁의 모습, 사회진화론의 현재 모습이다.

그러나 박노자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비폭력적 자유주의를 주장한 한용운을 통해 사회진화론 그 힘에 논리에 대항하는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용운은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일생의 행복이라' 주장하고 힘은 논리를 넘어서 진정한 자유를 가능하게 만들고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평등주의, 세계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렇다. 여전히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라고 하지만 그 정글에 빠지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민족주의 앞에서 그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들의 범 개인적인 투쟁과 평화와 공존을 위한 약자들의 투쟁과 연대는 우리가 만들어야할 새로의 정당성이고 꺼질 수 없는 희망이다.


-사실 1800년 대 말까지 경제력으로만 치자면 중국은 이제 막 산업혁명을 끝낸 유럽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서구가 아시아를 이길 수있었던 것에 대해 요즘은 새로운 분석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총과 세균이라는 지적이다.-

- 오~짱
■ 그때 그때 달라요
 
연행의 추억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 중 하나는 국가 권력의 강제적 힘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일일 것이다. 이럴 땐 참으로 기분이 더럽다. 연행을 당할 때 마다 참으로 기분이 더럽다. 연행자체가 더럽기도 하지만 연행 후 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 절차가 기분을 더 더럽게 한다. 7월 10일 나는 더러운 평택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전날 늦게 까지 벽화 작업을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방송소리가 났다. 동네 방송이다. 오늘 평화대행진 행사장을 경찰들이 쳐들어 왔다는 것이다. 눈도 제대로 띄지 못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을 입구에 나갔는데 풍경이 가관이다. 마을 입구 3거리를 경찰이 통째로 막고 있고 행사 준비팀이 주변에 자연물들을 뿌리며 길을 터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방송을 듣고 늦게 나온 평화바람 식구들과 나이 드신 동네 할머니들이 행사 준비팀과 경찰들 사이에 주저앉아 충돌하지 못하도록 하고 경찰에게 길을 터 줄 것을 요구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마을 길을 막는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문정현 신부님이 경찰이 있는 안쪽으로 계속 끌려들어가셨다. 이것을 본 평화바람 식구 한 명이 문정현 신부님이 끌려가신다고 소리를 지르고 경찰이 평화바람 식구마저 안으로 끌고 갔다. 사복 경찰이 연행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식구가 멱살을 잡히는 것을 본 나는 차 위로 올라갔다. 모르는 사람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기에 그것을 빌려 차위에서 경찰이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 식구에게 하는 행위를 촬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복 경찰 한 명이 '저 새끼 끌어내! 못 찍게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경들은 곤봉을 마구 휘둘렀으며 그러다가 핸드폰이 전경의 봉에 맞아 땅으로 떨어졌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전경이 휴대폰을 주어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그 사이 전경 두 명이 차위에 올라와 나를 밀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전경들이 있는 쪽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 나를 잡으라던 사복 경찰이 다가와 '이 새끼 죽여버려!'라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때리는 것 아닌가? 전경들에게 둘러싸여 맞았다. 특히 그 사복 경찰은 내 오른쪽 발목을 잡고 나를 시멘트 바닥에서 약 10미터 정도를 끌고 갔다. 실컷 때리더니 다른 사복 경찰이 와서 내 팔을 힘껏 비틀더니 나를 경찰 봉고차 안으로 밀어 넣는 것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연행 경험 중에 가장 기분이 더러운 순간이다. 아무튼 나를 포함한 연행자 3명은 평택 경찰서로 갔다. 각자 따로 분리시켜 조사를 할 모양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사복들이 약을 올린다. '떳떳한 일을 했으면 왜 말을 못 하냐?'는 등 '그러면 더 불리하다'는 등 '귀가 막혔냐?'는 등 옛날 같았으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웠겠지만 그것도 내 힘만 빼는 거다. 그래서 눈을 감고 졸음에 몰두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날 늦게 잔 것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잠시 후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신원이 파악된 모양이다. 이제는 이름이라도 알려달란다. 그런데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현장에 인력이 더 필요한지 조사를 중단하고 출동했다. 우리 세 명도 덩달아 팽성 파출소 앞으로 갔다. 거기에 큰 닭장차가 있었고 많은 사복들이 거기에 타 있었다. 20명 채우고 간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연행자가 계속 생기나 보다 생각했다. 연행당하며 가장 참기 힘든 게 사복들 끼리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조폭이랑 다를게 하나도 없는 사복들의 대화는 정말로 기분을 더럽게 한다. 물론 모든 사복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총으로 쏘아 죽여버려야 한다'부터 시작해서 이게 경찰인지 깡패, 양아치 새끼들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쌍소리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러다가 점심때쯤 안성경찰서로 갔다. 조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다시 명상에 잠겼다. 사복경찰이 이말 저말을 하더니 인적사항이라도 알려달란다. 그래도 명상이다. 이번에는 세 번 고지 후 강제 지문 날인을 한다고 한다. 그래도 명상이다. 약 1시간이 흘렀을까? 사복 한명이 지문 찍는 인주를 가져와 강제로 지문을 찍으려 한다. 마음속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할까? 다시 버티고 있는데 이번에는 의경 세 명을 더 데려오란다. 아니다 싶어서 종이쪽지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어 주고 다시 명상에 잠겼다. 경찰이 묵비 하면 반드시 신변 구속을 당할 거니까 후회하지 말라며 핏대를 세운다. 어째튼 나를 포기한 경찰은 형식적으로 몇 마디 더 하더니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저녁 까지 지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경찰서 마다 경찰청장이 보낸 대통령의 국정지표 같은 뭐시기가 경찰서 마다 붙어있었는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첫째는 형식적으로 치안이라고 하지만 둘째가 경제 질서 확립이고 세 번째가 인권 존중인 것이 아닌가? 눈을 흘겨보면 인권 위에 경제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뭔 경제 질서 확립인가? 경제를 위해서는 인권은 무시 되도 된다는 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찰도 꼭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경제와 인권을 선택하라면 우선 경제를 선택하라는 것이겠지? 노무현 정권의 인권의식을 그대로 반영 한 것이다. 볼 때 마다 울화가 치민다. 아침부터 저녁 까지 굶고 아무튼 지루한 시간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면서 보냈다. 안성에서 다시 평택으로 ... 잠시 후 다시 평택으로 옮겨졌고 쇼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뉴스에 평택 소식이 들렸다. 무척 궁금했는데 뉴스에서 보니 새롭다. 잠시 후 집회가 끝나고 나서 민주노총 식구들이 평택경찰서로 몰려왔다. 그 틈에 어리버리와 팬더도 들어왔다. 참말로 운도 좋다. 잠시 면회를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일까 하고 깜짝 놀랐다. 연행된 건 아닌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집회가 끝나고 내려가던 광주와 나주 농민회 차가기지 주변 상가에서 진행한 친미 집회 참석자들에게 테러를 당했다는 것이다. 집단 구타도 당했다고 한다. ‘이런 젠장!’ ..... 그리고 잠시 후 경찰서 밖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농성을 하는 듯하다. 문규현신부님과 이덕우 변호사 그리고 노동사목 신부님과 수사님이 오셨다. 인권 침해 조사를 하고 경찰서장 면담을 한 후에 12시가 넘어서 겨우 풀려났다. 나와 보니 나주농민회 동지들이 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고 연행자를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경찰서장의 사과를 듣고 농성대오와 함께 우리도 대추리로 다시 돌아갔다. 이제 몸도 옛날 같지 않아서 회복도 느리다. 멍도 잘 안 가신다. 병원가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입원하고 진단서를 끊었다. 정말 역겨운 경찰 폭력이다. “동생 같은 전경들 왜 때려!” 하는 사복경찰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형이고 아버지 같은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사복이 동생 같은 전경들 때리는 것을 걱정하니 어이가 없다. 보다 강고하게 민중들이 힘을 모으지 않는 한 폭력경찰에 의한 연쇄 테러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연행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연행의 추억은 언제나 더럽다.

- 맑은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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