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가민주주의와 노동자민중운동의 비약을 위하여
  이윤보다 인간을 DATE 2004-02-27 00:21:45  HIT 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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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국가민주주의와 노동자민중운동의 비약을 위하여


1. 이미 많이 잊혀진 용어인가? 그러나 이미 죽은 것이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변혁운동이 만약 자본주의를 극복하는데 그 요체가 있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정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2.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철학의 위기'라기 보다는 철학과 관계 맺는 '변혁운동 전반의 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입각해 원칙을 고수하고, 교조를 버리는 과정을 통해 사상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계승하고자 노력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동요와 혼란속에서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운동형태와 이론'이었다. 이렇게 해서 기존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조직형태와 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논리적인 근거를 찾게 되었다.

3.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대중운동의 위기이다. 모든 문제는 철학 및 이론,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분출하지만 결국에는 정치의 영역에서 폭발한다. 우리는 기존에는 철학은 고유한 어떤 것, 혹은 모든 투쟁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고한 나머지 철학 영역안에 '유물론'과 '관념론'을 대립시키고, 사회발전을 설명하는 기준으로 '유물변증법'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애초부터 철학이라는 고유한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은 인간의 삶, 즉 계급투쟁 속에 투영되어 과학(이론)의 형태로 유지되고 발전한다. 이것은 부르조아지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부르조아지의 철학은 부르조아의 지배를 강화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전술에 불과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피착취인민대중의 편에 선 이론과 그것을 돕는 과학적 세계관만이 존재한다. (비철학 테제) 그렇다면 철학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계급투쟁에 개입함으로써 그 효과를 산출하는 존재로서 철학인 이상 철학적 문제는 계급투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4. 1970년대 후반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폭발했다. 맑스의 역사과학은 생산양식의 이론은 있으나 이데올로기론이 없다. 맑스의 물신숭배론은 이데올로기론을 대체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는 맑스의 생산양식의 이론과 주체화 양식론(이데올로기론)의 접합을 요구한다. 우리는 역사적 유물론을 전화하여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에 도달하여야한다. 자본주의에도 역사가 있다. 자본주의에 역사가 있다는 말은 계급투쟁의 결과에서 부르조아지가 승리했다는 의미 이외에 피착취계급의 투쟁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역사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자본주의의 역사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과 분석하는 틀로서 역사적 자본주의의 문제설정을 수용한다.

5. 지금 당면한 현대자본주의인 초국적 자본주의의 특징은 민족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생산노동 없는 이윤축적을 구가한다는데 있다. 초국적 자본은 국가의 고유한 역할인 복지국가모델을 해체하고 인민대중의 권리를 축소하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자본주의가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수용하고 자유주의에 대행하는 사회주의적 강령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얻어진 보통선거권이나 복지국가모델은 자본의 이해에 따라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인 것이다. 초국적 자본은 직접적인 생산노동에 근거하지 않고 이윤을 축적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본은 민족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급기야 민족국가는 불필요한 것으로까지 인식하게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이론은 현재 자본주의 분석에는 적합하지 않다. 다만 역사적 마르크스주의가 시도한 최초의 착취입증 사례이자, 자본주의의 본질인 착취를 입증하는 지침서라는 측면에서 '가치이론'은 역사적인 의미성을 가진다.

6. 자본주의 정치를 넘어서는 길에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주어진 현실모순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자를 봉기/모순의 정치로 표현하고, 후자는 구성/이타성의 정치로 표현한다. 모순의 정치의 투쟁방향은 현실모순에 있고 이타성 정치의 투쟁방향은 현실과의 절연에 있다. 전자는 자본주의 붕괴전략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후자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건설(구성)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우리는 모순의 정치가 자발적인 봉기와 통하고 이타성의 정치가 목적의식적인 봉기와 통한다고 보고 있다. 모순의 정치는 자본주의 착취전략에 맞선 대항폭력의 논거를 제공하고 이타성의 정치는 폭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반폭력)을 제시한다.

7. 마르크스주의는 비지국가를 모방한 국가형태의 정치가 아니라 비국가형태의 정치를 해야 승리의 전망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비지의 국가형태를 모방한 당형태의 정치라는 요새에서 떠나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이론적 위기라는 일반적 위기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위기는 국가론의 부재와 당형태의 위기이고, 이데올로기적 위기는 근대 정치이데올로기인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중이데올로기로서 영향력의 위기이고, 이론적 위기는 계급투쟁의 과학적 분석에서 착취분석을 산술적인 비유로 대체하면서 자본의 추상성에 대비되는 노동의 구체성으로서 노동력재생산분석에 실패한 맑스이론의 한계이다. 이것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세 가지의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8. 조직은 과학적인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조직자체의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도 포함된다. 조직화의 딜레마는 조직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과학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우선시 된다는 점이다. 어떤 조직도 이런 현상을 피할 수 없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꼬뮨사회의 구성에 대한 정치이다. 꼬뮨사회는 오랜 인류의 이상향 가운데 하나이다. 민주주의 운동은 미래의 새로운 생산양식이 아니라 현재의 반자본주의적 운동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비상품, 비착취, 비억압, 비국가의 사회이다. 민주주의는 비국가의 정치를 해야 한다. 국가형태는 자본의 정치에 맞선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가 쟁점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강제적인 통일의 절차가 있는 국가형태에 반대하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에 기반해 자본형태에 반대하는 정치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강제적인 통일절차의 정치대신에 '사투와 대동단결의 모순적 균형의 정치'나 '차이와 연대의 정치'만이 존재하고 사적 소유권에 기반한 분배와 계산가능한 교환의 경제대시에 노동권에 기반한 필요에 따른 분배와 계산불가능한 선물의 사회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단순한 국가형태의 자본의 정치에서 벗어나 그 어떤 알 수 없는 형태의 정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가 있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이자 철학의 새로운 실천의 정치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일체의 권위나 제도, 그리고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새로운 실천으로서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를 주장한다.


9. 마르크스주의는 과거에 당형태 속에서 비지의 국가형태를 모방해서 반복하였다. 볼세비키당은 당/노조의 분할정립의 테제에서 비지의 의회제 대의제도 정치의 특징인 의회의 정치독점과 대중정치의 배제(정치는 의회내에서 한다. 장외대중선동정치는 배제되어야 한다.)를 당의 노동자대중을 대행하는 정치적 활동의 독점(당의 대행주의)과 노동자대중의 정치활동배제(노동자대중의 자생적인 경제주의 개량주의에서 벗어나자)를 반복한다. 볼세비키당은 의견의 강제적인 결집수단으로서 민주집중제를 창안했다. 네그리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탈을 쓴 강제적인 집중수단이라고 혹평한다. 민주집중제는 비지의 자유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파의 의견존중이라는 강제적인 통일절차를 마련하는 동안에 '진리로의 결집' 및 '논의는 자유롭게 집행하는 일사불란하게' 그리고 부르조아지와 마찬가지의 각종 규약적 의견통일의 절차로 운영되었다. 부르조아민주주의의 운영원리와 피티민주주의의 운영원리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의견의 불일치의 경우에 최종근거로서 '다수결의 원리'이상가는 원칙이 있는가? 이것이 민주집중제가 비판되는 이유이다.

10. 비국가 형태의 꼬뮨정치가 조직운영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꼬뮨사회의 운영원리로서 각 개인의 독자적인 내재적 차이와 연대의 정치를 주장한다. 이것은 근대의 주권의 구성원리로서 인권의 선행성의 논리에 충실한 원칙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로서 꼬뮨사회의 조직에 불참할 권리도 인정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각개인의 독자적인 내재적 차이를 우선적으로 인정한 후에 윤리적으로 연대를 추구한다. 인권은 국가주권의 구성을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인권은 심지어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에도 참여거부를 실천할 권리를 가진다. 비국가 형태의 꼬뮨정치는 내재적 차이가 있는 독자성들의 연대를 추구하는 정치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가 독자성들의 연대의 구축에 성공할 때에 대중운동이 시작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가 실천될 수 있는 최소조건은 정치의 성립조건으로 내재적 차이를 가진 개개인들이 연대해서 조직으로 구축될 때부터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사회의 정치는 참여성원의 가입탈퇴가 자유로운 열린 조직으로서 구성된다. (활동가들의 차이와 연대의 정치)
둘째,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꼬뮨사회의 운영원리로서 사투와 단결의 정치를 주장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참여한 성원들이 의견을 결집하는 방법으로서 사상투쟁과 대동단결을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흔히 민주집중제가 부르조아지의 국가형태를 모방한 강제적인 의결통일의 절차가 있는 제도라고 비판하면 그럼 도데체 무슨 방법으로 의견을 통일한다는 말 인가라고 황당해 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참여한 꼬뮨사회의 구성원들이 윤리적 원칙으로서 가능하면 철저하게 객관적 진리를 찾기 위한 사상투쟁을 벌리고 가능하면 효과적으로 대중적인 힘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운영원리로서 한편에서는 제도이면서 한편에서는 윤리를 주장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현실적으로 민주집중제가 효과적으로 보일지라도 민주집중제의 제도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하지 않고, 사투와 단결의 정치속에서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구성에 노력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표면상 민주집중제를 채택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 민주집중제는 강제적인 통일의 절차가 아니라 꼬뮨주체를 연대 및 단결로 호명하는 윤리적인 호소수단일 뿐이다. 국가형태의 민주집중제와 비국가형태의 민주집중제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참여성원이 강철의 규율을 스스로 규정해서 스스로 지키는 열린 규율의 조직이다. (열린 규율로서의 사투와 단결의 정치)
셋째,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꼬뮨사회의 윤영원리로서 각 인민대중운동들의 독자적인 고유한 차이와 연대의 정치를 주장한다. 비국가의 정치는 투쟁의 다차원성으로 드러나는 복수의 적대들을 인정하는 다양한 인민대중운동들 사이의 차이와 연대의 정치이다. 민주주의적 비국가의 정치도 무정부주의적 비국가의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마르크스주의는 노자적대에 기반한 노동운동을 가장 중심적인 운동으로 간주하고 여타의 적대와 차이들은 기본모순으로 인정되는 노자적대의 모순으로 환원시켰다.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다양한 대중운동들의 고유한 특징으로 인해 다른 운동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운동들이 있다. 현재 노자적대의 정치 이외에 성차이의 정치와 지차이의 정치가 독자적인 영역으로 간주된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이러한 다양한 인민대중들의 독자성 혹은 독자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 연대를 윤리적으로 구축하는 활동이다. 비국가형태의 꼬뮨정치는 인민대중운동들 사이의 차이와 연대의 정치이다. (인민대중운동들간의 차이와 연대의 정치)


11.결론적으로 말하면 비국가의 정치는 자본의 국가형태의 정치에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정치이다. 국가의 정치에 반대하는 정치가 대중의 정치이다. 대중은 다양한 내재적 차이를 가진 개인들이 집단화한 것이다. 다양한 인민대중의 정치중의 가장 중요한 정치가 비국가의 정치이거나 아예 인민대중의 정치가 비국가의 정치자체이다. 대중의 정치는 국가형태의 자본의 정치에 적대적인 비국가형태의 정치의 수단이다.

12. 한번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는 참 좋은 제도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까지 용인해야 하는 이상한 운명을 가진 제도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바로 그 특징 때문에 위태로운 것이고 또한 고귀한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당연히 민주주의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비판이 존재한다거나 용납하기 힘든 의견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용납하기 어렵다거나 힘들다거나 기껏해야 심리적인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는 항상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비판이나 의견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직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의견차이를 해결하는 공통의 합의 기반이 존재하느냐 일 뿐이다. 논쟁 과정에서 어떤 개념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느냐 오해되고 있느냐 혹은 주장이나 비판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느냐 오해되고 있느냐 따위는 항상 직면하는 문제이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논쟁에서 누가 승리했느냐 따위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문제 거리는 상호 합의의 기준이 존재하느냐이다.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곳에서 비판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과정에서도 비판은 파열의 한 신호이다. 동일한 비판이 한 쪽에서는 조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직을 망치는 신호가 된다. 아니 동일한 비판이 한 쪽에서는 조직이 망해가고 있는 징조가 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직이 발전해 가는 징조가 된다. 민주주의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성립시키려고 몸부림쳐 온 것이다.

13.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관계의 존재를 본다. 자본가는 이 사실을 보지 못한다. 자본가가 이 사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영향권 안에 존재해서 무의식적으로 착취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 밖을 모른다.
또 다른 쟁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현존하는 국가 사회에 산다. 우리는 국가 사회에서 비민주적인 강제적 통일을 본다. 국가주의자는 자신의 정치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만을 볼뿐이지 강제성을 보지 못한다. 어떤 자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민주집중제의 차이를 본다. 이 차이는 목표의 차이이지 민주주의의 차이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 밖을 모른다.

14. 노동자민중운동의 비약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민중운동이 비약하려면 먼저 비국가 민주주의자가 탄생해야 한다. 비국가 민주주의가 몸에 밴 노동자민중운동 활동가와 조직이 탄생하면 노동자민중운동은 저절로 비약한다. 비약의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은 자신의 조직형태를 실현한다. 일찍이 파리꼬뮨이, 집강소가, 소비에트가, 광주공동체가 비약의 과정에서 탄생한 노동자민중들의 조직형태 - 비국가 꼬뮨 - 들이었다.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실현될 뿐이다. 다만 활동가는 먼저 인식하고 노력과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비약은 쉽다. 비약하기만 하면 된다. 비약하자! 목숨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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