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꼬뮌을 상상한다
  이윤보다인간을 DATE 2004-03-16 17:00:19  HIT 518  

부안꼬뮌을 상상한다



고길섶 (부안 주민. 문화연대 편집위원장)




2월14일 부안에서 자치적 주민투표가 있던 날, 김종규 부안 군수와 강현욱 전북도지사는 군 및 도청 공무원들을 풀어 주민투표 방해활동을 했다. 주민들의 압도적 감시체제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까지는 하지 못하였으나 동태를 살피는 등의 행태로 방해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떳떳하지 못하여 주민들로부터 항변에 시달려야 했으며 때로는 자동차로 토끼몰이 당하며 쫓겨나야 했다. 부안의 2 14주민투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건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민이 관을 감시하는 체제 아래에서의 주민투표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전례 없는 의미를 가진 역사적인 '자치적 주민투표'였다. 헬기 유인물 살포나 일부 주민 관광보내기, 관제집회 등 각종 방법들을 동원한 부안군의 방해활동에도 불구하고 부안 군민은 2 14 주민투표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 핵폐기장 찬성파의 투표소 점거에 의해 위도면에서는 투표행위가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투표권자 52,108명 가운데 37,540명이 투표함으로써 72.04%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고 그 가운데 찬성 2,146명, 반대 34,472 명을 기록함으로써 반대가 91.83%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부안군대책위는 2월15일 집회를 열고 '핵폐기장 백지화'를 스스로 선언했으며 주민들은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예상했던대로 2 14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노무현 정부는 부안을 철저히 무시해왔으므로 부안 사람들은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었다.
부안사람들은 반핵투쟁 내내 외쳐왔던 '부안독립'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인정되지 않는 주민투표 승리, 따라서 핵폐기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투쟁의 피로증을 노려 사태를 장기화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더러운 음모만이 있다. 그러나 부안주민들은 지치지 않고 제2의 투쟁으로 나아 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부안 사람들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주민투표 이후 군대책위는 즉각적으로 김종규 군수 퇴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월27일에는 군수퇴진 결의대회를 열었으며 주민들은 가슴에 "김종규 군수 퇴진"이라고 쓰여진 노란색 바탕의 리본을 달고 다닌다. 이 리본 문구에 불만인 사람들도 많다. '김종규'가 아니라 '핵종규'라고 써야 한다는 사람, 왜 '군수'라는 말을 넣느냐는 사람 등. 이제 본격적인 김종규 퇴진운동이 시작되고 있으나 직접행동으로 계속 이어질지, 상징적인 의미투쟁으로 그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외에도 부안투쟁에는 현안과제들이 많다. 부안의 이미지 살리기 운동, 살림살이 및 경제 회복운동, 부안사태 책임자 처벌 등이 있다. 8개월 간의 투쟁으로 부안은 일거에 유명해졌지만 경제는 말이 아니다.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살림살이 및 경제의 상태가 안 좋아졌지만 주민들의 문화는 매우 긍정적으로 변하였다. 투쟁을 매개로 한 공동체적 문화의식이 새로운 흐름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주민들은 부분적으로 일상에 복귀하면서도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일 넘게 매일 밤 진행해온 촛불집회는 매주 금요일 저녁 1회로 조정했다. 그것은 일상의 복귀인 동시에 새로운 투쟁의 준비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이제 일하면서 싸울 것이다. 장기항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느슨해지거나 해이해지지 않고 새로운 종류의 강도와 밀도를 높이는 투쟁일 것이다.

부안대책위는 2월15일 집회에서 부안 자치공동체 선언을 했다. "주권재민, 국민이 주인 될 수밖에 없음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합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낡은 정치, 독재의 그림자를 말끔히 쓸어 냈습니다. 껍데기뿐인 민주주의 그 위선의 장막을 걷어 내고 민중이 주인되는 정치!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 진정한 주권재민의 정치! 부안 자치민주주의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자치공동체는 선언으로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들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실천들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반핵민주투쟁 기간 동안 새롭게 출현한 다중주체들의 연대활동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설적인 주민자치 및 연대기구의 결성이 필수-필연적이다'는 것이다. 부안군 전체적으로는 가칭 '부안주민연대'를 창설하고 각 읍면별 단위로는 가칭 '주민자치위원회'를 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일상과 생업으로 돌아가는 대신 새로운 자치기구들의 창설을 통해 주민투쟁의 역량을 일상화하자는 것이다.
'부안주민연대'는 군정-면행정 등을 감시 및 비판하고 정책대안을 생산하며 주민들의 자치활동과 연대활동을 펴나간다. 여기에 사무국, 정책위원회, 군정감시센터, 조례제개정위원회, 축제문화위원회 등을 두고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부안 군정은 누가 군수가 되든 간에 이제 더 이상 군수의 독점과 군청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에 맡길 수는 없다. 투명한 군정하겠다고 군수실 문을 유리문으로 만들고서도 태연히 뻘짓하는 작태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진짜 주민들을 위한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의 생활정치를 해야한다. 그것의 실천기구가 '부안주민연대'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읍면별 주민자치위원회'는 지금의 읍면대책위원회를 주민자치기구로 전환시켜내려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 행정을 감시 및 비판하고 주민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핵폐기장 싸움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주민들의 공공적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시켜나갈 수 있다. 이제 주민들이 더 이상 행정권력에 고개 숙이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정당당 주인이 되어 주민행정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힘을 가져야 한다.
'부안주민연대' 및 '주민자치위원회'는 부안 주민들의 새로운 힘이 되어 군정과 행정을 올바르고 사실상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이 핵폐기장 투쟁의 민주적 성과이며 새로운 부안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구체적 내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앞으로도 계속될 핵폐기장 투쟁의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다. '부안주민연대'와 '읍면별 주민자치위원회'는 수직적 종속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로, 자율성과 독자성을 갖는 주민자치위원회로 네트워킹되는 게 바람직해 보이며, 그 속에서 강한 결속과 연대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군대책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대책위는 지속되어 핵폐기장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군대책위 활동을 포괄하되 그와는 별도로 '부안주민연대'를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안주민연대'는 군대책위 내부에서만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공론화하면서 세워나가야 한다. 이런 기구들이 조직화된다면 군정 및 행정권력을 견제하는 집단적 주민권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작년 7월 이후 반핵민주투쟁 기간 동안 부안 주민들은 이중권력의 힘을 여실히 보여왔다. 특히 2 14 주민투표는 주민권력의 본때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민자치기구들이 실제로 창설 가능할 것인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당위론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제론적 차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 주민들의 정서상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며 따라서 상당부분 군대책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줄포면의 경우 2월28일 농민회가 결성되는 성과를 안았다. 줄포면 대책위가 핵폐기장 반대활동을 통해 쌓은 동력을 농민회의 결성으로 이어나간 것이다.
또 하나, '부안주민연대' 및 '주민자치위원회'와는 별도로 각각의 존재양식과 활동영역별로 혹은 그것을 가로질러 다양한 모임, 단체, 조직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치학교모임, 여성모임, 문화모임, 유기농모임, 에너지대안모임, 청소년모임, 교사모임, 환경모임, 관광문화개선모임 등등. 이러한 새로운 모임들이 가능해질 것이며, 이 모임들은 각자의 독자성을 가지면서 '대안사회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안사회 네트워크는 '부안주민연대'와 함께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부안의 또 다른 힘이 될 것이다. 지금 준비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부안의 새로운 신문이다. 부안 대안신문 창간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창간준비 활동을 하고 있다. 유기농연합회 결성도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예술인모임도 조만간 이루어질 전망이다. 투쟁기간 결성된 노래패
'노랑고무신'이나 '무대팀' 등도 동아리 형태로 활동 등이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은 부안 반핵민주투쟁의 성과와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들이자 자치민주주의에 따라 부안 대안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역동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부안꼬뮌'으로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 대해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웃고 말 것이다.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일하면서 싸우는 것, 그것은 곧 웃으면서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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