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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현장투쟁으로 구조조정 분쇄하고 비정규직 철폐하자!
1. 우리는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가?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자본의 합의 불이행을 규탄하며 파업을 선포했다! 정세의 고비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세의 필연이다! 자본 위기의 중심지점이 어디이고 노자간의 대립지점이 어디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자본과 총자본인 국가의 합의 불이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우자동차, 철도,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본 것처럼 자본은 노동자와의 합의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미루거나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노동자가 자본과의 힘겨운 투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이제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하는 순간, 자본은 두더지가 땅굴을 파듯 현장을 파고 들어와서 노동자를 회유하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통제를 강화한다. 노동자 내부의 끈끈한 동지애와 활력은 약화되고 현장에는 자본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정서가 형성된다. 이 때 자본은 합의서의 불이행 또는 변경, 사실상의 합의서 폐기를 감행한다. 그리고 이런 조치에 반발하는 노동자의 파업을 직장폐쇄와 경찰력 동원으로 파괴한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권력은 단지 합의서 폐기가 아닌 그것을 미끼로 노동자의 조직력을 파괴하고 노동자의 불신과 반목을 격화시킨다. 노동자의 단결력이 바다의 물과 같고 노동자의 투쟁력이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고 있을 때 자본은 심각한 이윤활동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일단 물러난다. 그리고 노동자의 내부를 교란시키는 보이지 않는 일상활동을 축적하고 난 뒤 노동자가 쉬거나 자는 틈을 타서 무자비한 집중공격을 퍼붓고 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초토화시키려고 한다. 결국 ‘합의’는 ‘합의’일 뿐이다. 이 합의가 ‘이행될 것인가 폐기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의지, 힘, 열정에 달려있다. 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이 없는 노동자의 활력이 없는 합의서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지 않으면 죽는다! 노동자에게는 쉴 자유가 없다. 돈이 없고 생산수단이 없고 생활필수품이 없는 노동자가 어떻게 쉬면서 살 수 있겠는가!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해야 한다. 이것이 자본이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하나의 덕목이다. 그러나 이 덕목마저도 노동자에게는 하나의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노동자에게는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없기 때문이다. ‘노예로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이 물음은 이렇게 바뀌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 것인가, 실업자로 살 것인가?’
자본주의사회는 노동자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빼앗고 있다. 아니다.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자본이 노동자가 최저생계비를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임금노예의 권리마저도 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은 자본의 규모나 힘이 축소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규모가 너무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그 규모만큼 위기도 거대해져가고 있다.
자본생산의 세계화와 엄청난 부의 축적은 과잉생산을 낳고 한편에서는 실업과 비정규직의 거대한 확대, 빈곤과 삶의 불안정의 확대를 생산했다. 상품이 남아 돌고 이윤의 원천인 노동자 수가 줄어들어서 자본은 이윤율이 떨어지고 자본의 축적이 교란되는 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하여 자본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비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임금동결과 임금삭감을 강요하고 있다.
자본은 이런 조치를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비정규직 확대, 고용불안, 실업자 증가는 바로 이 자본의 ‘구조조정’의 산물이다. 구조조정은 이 시대 자본의 숙명이다.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을 분쇄하는 것은 이 시대 노동자의 숙명이다.
노동과 자본의 삶과 죽음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교차하는 때에 노자합의나 타협은 일시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노동조합주의라는 이기적인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체제적 전망을 갖는 투쟁과 결합하는 것이다. ‘구조조정 분쇄’를 기치로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노동자의 미래를 단일한 전체로 결합하는 것이다!
2.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절’을 거부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봄날의 햇살 앞에서 그 추악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현장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상층의 타협과 거리 캠페인, 국회청원으로 대체하고 현장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오랜 야인생활을 청산하고 중앙으로 진출하여 자신들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노동절 행사에서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다.
노동절은 정세와 무관하게 하늘에서 내려온 날도 땅에서 솟아오른 날도 아니다. 거친 정세의 바다를 항해하는 노동자 투쟁의 배다. 따라서 철저하게 당면정세에서 기획되고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국민과 함께, 아니 국민을 거슬리지 않고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을 축하하는 오붓한 잔치로 기획했다. 물론 겉으로는 달콤한 투쟁의 언어를 내뱉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잠시 들어보자.
“2004년에는 임단투 시기집중과 당면투쟁을 배치하면서 평등과 연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총투쟁을 현장으로부터 철저히 조직해 나간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말은 전후 관계를 따져서 이해해야 오해가 없는 법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총투쟁”을 “조직해 나간다.”라는 것이다. 2004년 임단투는 2005-2006년 “총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책임있는 결정, 철저한 조직화과정을 거쳐 현장조합원과 함께 하는 2005-2006년 총투쟁을 전개한다.”
민주노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2005년-2006년 총투쟁을 위하여 2004년 임단투는 ‘조직화’라는 준비만 해야지 투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총투쟁”의 정체가 총파업을 포함한 전국적인 투쟁을 뜻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2004년 투쟁은 전국적인 투쟁으로 발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2004년에는 총투쟁을 전개할 사안이 발생하지 않다가 갑자기 2005-2006년에는 총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인가? 민주노총 지도부는 모든 전투를 주관하는 전쟁의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왕 예언의 세계에 들어간 마당에 정확하게 몇 년 몇 월, 몇 일부터 몇 일까지 총투쟁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 주시는 것이 어떨지, 아니 총투쟁의 길일을 잡아 주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민주노총 지도부의 계획과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답은 ‘아예 투쟁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선 정세는 노자간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현재 자본은 이미 앞에서 그리고 우리 노동자정치신문(가칭) 준비호1,2,3,4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공격과 착취 강화를 할 수밖에 없고 또 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은 이를 ‘상시적 구조조정’이라고 규정했다. 즉 IMF 경제위기 이후의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집중적 구조조정’으로 규정한다면, 이 4대부문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후 이를 더욱 확장해 나가는 것을 상시적 구조조정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집중적 구조조정’과 ‘상시적 구조조정’을 위기와 안정과 같은 관계의 말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집중적 구조조정은 상시적 구조조정을 통해서 전면화 될 수 있다. 또한 상시적 구조조정은 자본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집중적 구조조정으로 바뀔 수도 있고 집중적 구조조정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은 노동법 개악과 공권력 투입을 통하여 자본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그 걸림돌을 제거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자본의 구조조정은 열린 우리당의 국회 과반수 장악으로 더욱 더 일관되고 강하게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갈등은 일반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터져서 전국적으로 발전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전반적인 노자관계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현실의 노자관계를 관통하고 있다. 계속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외환카드와 엘지카드 그리고 금융전반의 구조조정 움직임, 철도, 사보를 비롯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보라!
이런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하여 민주노총 지도부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박일수 열사 분신투쟁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불개입 태도를 취하면서 지역차원에서 별 탈 없이 해결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투쟁이 진행되자 투쟁에 개입하여 “평화”와 “질서”를 설교하고 투쟁의 확대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지극히 형식적인 분신대책위의 합의로 막을 내렸다. 외환카드 같은 경우, 피해최소화 기조에 따라서 외환카드 노조집행부와 사무금융연맹이 ‘민주적 구조조정’ 즉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다가 자본의 공격에 투항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집행부의 삶은 보장하고 조합원들의 삶은 어쩔 수 없다는 이면합의가 있었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태도는 명확하다! 최대한 투쟁에 개입하지 않고 당사자간 해결에 맡겨 두었다가 커지면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상층부의 타협을 주선하는 것이다. 현장의 역동적인 투쟁이 전국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조직하기는커녕 전국적으로 확장되어 총자본의 인격체인 노무현 정권과 붙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2005-2006년 총투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노선과 태도와 지도력에 큰 영향을 받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의 의도대로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현장의 조직력은 계속 무너지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고통과 불만과 분노가 가열되고 있다. 노동자는 견딜 수 없어서, 죽지 않기 위하여 아니, 그냥 죽기 보다는 싸우다가 죽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전가된 자본의 억압의 바위덩어리를 밀치고 일어난다.
또 평상시 노동자의 고통과 분노와 투쟁을 외면하다가 2006년 총투쟁을 전개한다고 할 때 누가 그 주장을 믿고 그 지도에 동조하여 총투쟁을 전개하겠는가?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고 어떻게 조직력과 투쟁력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말하는 2005-2006년 총투쟁 준비와 조직화는 파업과 전투적 시위를 배제한 교육, 토론회, 교섭, 평화적 시위와 농성만 하자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여기에 잘하면 특근이나 잔업 거부, 부분파업 정도가 첨가될 것이다. 이는 다음의 민주노총 지도부의 구체적(?)인 계획에서도 나타난다.
“4월 말에 전조합원 행동 주간(4/26-5/1)를 설정해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다양한 투쟁을 펼치고, 노동절에 투쟁력을 집중 배치함으로써 노동개혁요구를 쟁점화하고, 6월 임단투로 연결시키는 현장의 대중적 결의를 드높인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구체적으로 한 것이 무엇인가?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주장은 순전히 공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있는가? 어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조직하고 있는가? 어떤 노동운동탄압분쇄 투쟁을 조직하고 있는가? 진정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이번 금타 비정규직 투쟁에서도 민주노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국회활동을 지원하는 것과 국민과 함께 조용하게 힘을 지역별로 나누어서 조용하게 노동절을 치루는 것밖에 없다.
“4.15총선을 통해 당선된 민주노동당 후보와 함께 하면서, 민중과 함께 하는 17대 국회의 활동계획을 대중적으로 선포한다. 노동절대회는 지역별(수도권은 서울 집중)로 전조합원 행동주간에 이은 힘찬 노동절투쟁을 전개함으로써 …‧ 임단협 승리를 결의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번 노동절을 민주노동당 국회진출 축하집회로 기획하고 행진도 하지 말자고 했다가 연맹에서 반대하여 행진이라고 하게 된 것을 보면 민주노총 집행부의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민과 함께’ 곧 국민의 심기를 괴롭히지 않는 노동운동을 하자는 것, 격렬한, 전국적 투쟁 없이 상층부의 대화와 타협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민주노총의 힘을 민주노동당에 전폭적으로 밀어주어서 국회 안에서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노조의 힘을 몰아주어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으로 민주노총 지도부의 의도와 노선은 모아진다.
3. 민주노동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총선은 끝났다. 총선은 언론과 광화문에서의 요란한 탄핵반대 보도와 집회와는 달리 조용하게 끝났다. 탄핵반대 곧 ‘한나라당 반대냐 아니냐’의 문제로 왜곡되어 표출된 대중의 부르주아 정치일반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별다른 선거운동이 필요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선거후에도 선거결과에 대한 관심은 부르주아 언론에서는 요란하게 방송하고 있지만 대중들은 조용하다. 정확한 정치적 내용과 실체가 없이 심각하게 왜곡된 일종의 바람선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멍한 상태에 있다. 선거국면에서 보여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민주당의 극심한 여론 지지도의 변화를 보라. 이 선거바람을 타고 민노당은 국회10석을 건지는 화려한 국회입문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민노당은 국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민노당이 할 수 있는 것은 국회에 일정한 환상을 불어넣고 노동자의 투쟁을 정책투쟁으로 왜곡하는 것, 즉 노동자의 현장투쟁을 의회주의로 전도하고 현장의 투쟁동력을 소진시키는 것이다. 민노당은 열린우리당의 지원을 음으로 양으로 받았다. 민노당을 ‘이후 정책공조를 할 수 있는 당’으로 말하는가 하면 ‘진보정당도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여서 민노당에 대한 여론을 조성했다. 그리고 미디어의 조명을 받도록 했다. 창원에서 후보도 내지 않았다. 민노당 대표에 대한 지지와 배려라는 측면에서 이것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열린우리당이 민노당에 공을 들인 것은 직접적으로는 한나라당을 수구세력으로 몰아 붙여서 ‘개혁세력 대 수구세력’의 선거대립구도를 갖추기 위해서다. 이런 대립구도는 이후 의회활동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즉 열린우리당은 민노당을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고 정책결정에서 개혁적인 정책, 국민적인 정책이라는 이미지를 유포하고 열린우리당을 사회통합적 정당, 국민적인 정당이라는 대중적 이미지 조작에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공격을 막아내고 한나라당을 고립시키는 응원군으로 활용할 것이다.
민노당은 원내교섭단체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민노당은 이번에 다시 한 번 미디어 선거의 힘을 맛보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언론 플레이와 부드러운 이미지, 합리적인 정책정당의 모습을 갖추려고 할 것이다. 과격한(?)투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국회 안의 정책투쟁이나 미디어 토론회나 정당 연설회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려고 할 것이다. 또한 무조건 반대하는 야당의 이미지를 피하기 위하여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제한적으로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이 대상은 열린우리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소위 ‘국민’들은 다양한 계급과 계층, 지역으로 대립하고 있다. 노자적대와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주택문제, 교육문제, 의료문제, 신용문제, 노년문제를 비롯한 모든 사회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라는 공통분모는 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민은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계급문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근거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자본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변하느냐’의 차이다. ‘개혁적 포장지에 싸서 대변하느냐, 단순하고 명확하게 대변하느냐’의 차이다. 자본의 요구를 강력하게 대변하는 ‘규칙’과 ‘형식’의 차이다. 사회적 합의와 동의의 외피를 쓰고 강력하게 자본의 의지를 대변할 것인가 아니면 외피는 필요 없고 직접적으로 힘으로 시원하게 대변하느냐의 차이다. 이것이 노무현과 (박정희)박근혜의 차이다. 현재 남한 정치형태가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가 자본과 정권의 침탈에 단호하게 방어적 무장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파시즘은 경향이 아닌 세력으로 비참한 우리현실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민노당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사회통합적 이미지, 개혁적 이미지를 확보하는데 민노당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노총을 체제내부로, 구조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민노당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노총을 힘으로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은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고 또 현실적으로 실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타협적 구조로 유인하여 포섭하는 것이 효과적인 선택일 수 있다.
따라서 민노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자본과 노무현 정권의 구조조정의 정치적 도구로 작용하거나 의회와 노조 사이에서 좌충우돌 하는 것뿐이다. 동지들, 우리가 너무 비관적으로 사태를 본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함께 지켜보자!
4. 단호하게 투쟁하고 정치적 전망을 현장에서 창출하자!
자본의 위기는 노동자 삶의 위기로 전가되고 있다. 이 위기의 극복 없이 노동자 삶의 미래는 없다! 이 위기의 극복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정치적 미래를 개척하는 것, 구조조정 분쇄 투쟁을 통해 생존권 투쟁과 노동자 권력 장악의 전망을 결합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 이 길이 험하고 그 수가 적더라도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노동자와 정치세력들은 단호하게 선택하고 함께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박일수 동지 분신투쟁 과정에서 울산에서 이 일을 확고하게 할 수 있는 노동자 수가 3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참하고 씁쓸한 현실운동의 모습이지만 외면하지 말고 냉정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이 울산의 30명이 전국 모든 지역의 30명과 결합하여 하나의 굳은 대오로 결집하면 그 힘은 멀지 않아서 300명, 3000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세력에 기죽고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30명의 대오조차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현재 계급투쟁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런 저런 활동가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동자의 대의를 단호하게 실천하는 진짜 활동가이다.
우리는 다시 동지들에게 묻는다!
“적더라도 할 것인가, 적기 때문에 포기할 것인가?”
이번 임단협 투쟁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의 임단협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자!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비정규직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의 문제, 노동자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없이 노동운동의 단결도 발전도 없다.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해결과 연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금속노조 임단협 요구안 설문조사와 금호타이어 설문조사를 보면 이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의 결과이다. 더 이상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불안의 방패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생존권의 문제가 심각해진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자!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는 외롭고 처절하게 비정규직 철폐를 내걸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비정규직 철폐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정규직 활동가와 정규직 노조를 투쟁의 대열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번 금호타이어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 합의는 일부 대상의 제외 문제가 있지만 비정규직 철폐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계하자. ‘부분적 정규직화’, ‘점진적 정규직화’는 노동자의 분열과 이기주의를 강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정규직 활동가와 함께 ‘비정규직 철폐’의 깃발을 굳게 잡고 투쟁하자! 노동운동탄압 분쇄투쟁을 함께 하자! 많은 전투적 활동가들이 구속되고 수배되었다. 자본과 정권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구호를 내걸고 로비를 할 뿐 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있다. 투쟁을 통해 구속된 동지들을 구출할 때 동지들의 투쟁정신이 살고 투쟁에 대한 자신감도 커질 수 있다. 투쟁한 동지들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개별 사업장 수준이 아닌 전국적인 노동운동탄압분쇄 투쟁을 조직하자!
특정 시기에 틀에 박힌 투쟁, 관료주의적으로 통제되는 투쟁이 아닌, 역동적이고 파상적으로 확장되는 투쟁을 조직하자! 민노당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의회주의와 관료적 조합주의를 거부하자!
노동절을 기점으로 이런 투쟁과제를 조직적, 실천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지역 선봉대를 전국적으로 조직하여 현장과 지역과 전국의 대중투쟁을 선도하고 엄호하고 조직하자.
동지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노동해방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행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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