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 빚, 금융시장 지뢰밭 되나
[중앙일보 표재용.최준호] 내집 마련을 위해 서민이 떠안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집값 폭등에 따라 내집 마련에 필요한 대출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금융 시스템에 적잖은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서는 서민 경제의 지반 침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금융 전문가들은 "치밀하고 다각적인 대책이 아닌 땜질식 응급처방이 남발될 경우 가계 부채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뒤늦게 시작된 당국의 규제로 가계대출이 잠시 주춤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이미 신뢰를 잃은 데다 금융권의 대출 경쟁 역시 여전하기 때문이다.
◆ 가계 부채 위험 수위 넘었나=전문가들의 잇따른 경고와 당국의 대출 억제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계의 빚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계의 금융부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나 증가했다. 특히 늘어나는 가계빚의 3분의 2가량이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자금 마련에 쏠려 있다.
올 1~9월 26조2000억원에 달하는 가계대출 증가액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63.7%(16조7000억원)나 된다. 그나마 6월 감독 당국이 대출 억제를 위한 창구지도에 나서는 바람에 증가세가 잠시 꺾인 게 이 정도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서민의 불안을 키운 탓에 되레 너도나도 앞다퉈 집을 마련하려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빚을 늘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위축으로 기업대출 시장이 쪼그라들자 금융권이 개인을 상대로 한 대출 세일을 벌인 것도 가계부채 부담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반면 가계의 금융자산은 같은 기간 3.7% 느는 데 그쳤다. 자산 증가율이 부채 증가율을 따라잡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로 인해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43.2%에서 올해 6월 말 44.3%로 치솟았다. 대만(17%)과 일본(26%)은 물론 씀씀이가 큰 미국(32%)보다도 훨씬 높다.
서민들의 빚 상환 여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개인 가처분 금융부채비율(가용 소득에서 금융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1.36배에서 올 6월엔 1.41배로 높아졌다.
한은 금융안정분석국 관계자는 "가계의 금융부채가 자산과 소득보다 훨씬 빨리 늘고 있다"며 "특히 안정성이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이어서 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2003년 말 4.6%에 달했던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은 최근엔 1.1%로 쪼그라들었다. 은행들이 노골적으로 금리 변동 위험을 고객에게 떠안긴 결과다.
한국금융연구원도 5일 가계대출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김동환 연구위원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아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금융 시스템은 물론 실물경제 침체를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반창고 정책'은 이제 그만=당국은 이번에도 주택담보대출 취급 실태조사 등 대출 수요 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응급 조치다.
금융 전문가들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실시하는 창구지도 수준의 대책 약효는 일회성에 그칠 공산이 큰 만큼 보다 포괄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한은은 "우선 가계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변동금리 주택대출이 무한정 늘어나지 않도록 금리 변동폭의 상한선을 도입하거나, 고정대출의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침체로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계 상황에 몰릴 수 있는 가계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와 관련, 금융연구원은 "금융권 전체의 대출 현황과 여신 건전성을 체크할 수 있는 통합 점검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기 과제로선 부동산으로 쏠리는 자금의 물꼬를 돌려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부동산보다 자본시장 쪽으로의 자금 유입이 보다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은행들이 개인 상대의 주택담보대출에 매달리지 않고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유인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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